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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넬의 생츄어리

3. 주원장 ~동족학살을 통해서 천하를 제패하다. 본문

세계의 역사

3. 주원장 ~동족학살을 통해서 천하를 제패하다.

카바넬 2019. 11. 3. 17:12

홍건적이 난을 일으키면서, 원의 힘이 약해지자 곳곳에서 반란이 터지기 시작했다.

몽고족은 철저하게 한족 차별정책을 행했고, 특히 유학자, 선비들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행해서 과거세도를 폐지한다.

심지어 선비는 창녀보다 못한 하층 신분으로 대우할 정도였다.

 

이러한 차별 정책 때문에 많은 선비들이 관직에 나갈 수 없어서, 생계를 위해 소설가, 극작가가

된다. 비록 선비들에게는 가장 암흑기였지만 중국의 민중문학사상 최고의 걸작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다.

관직에 나가지 못한 뛰어난 선비들이 생계를 위해서 통속소설을 쓰면서, 중국 문학사상 최고의

걸작인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 등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조선 시대에 흔히 한글로 씌인 언문소설들을 쌍넘들의 문학이라고 비하했던 조선의 선비들과 달리

원나라 시대의 중국 선비들은 서민 독자들을 위해서 쉽고 재미있는 언문으로 된 서민문학을 창조하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4대 기서가 나오게 된다.

 

 

몽고족들에게 창녀보다도 낮은 신분으로 전락한 선비들은 서민문학을 통해서, 삼국지의 영웅들처럼

몽고족을 격파하고, 한족의 영광을 되살리자고 외친다.

야만적인 몽고족들에게 창녀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모욕과 탄압, 빈곤에 시달리는 선비들은

삼국지, 수호지를 통해서 이민족 정권을 붕괴시키고, 한족의 위엄과 자부심을 되찾자고 선전한다.

안그래도 쿠빌라이 사망 이후 원나라의 부정부패와 무능은 극에 달했고, 수탈과 착취, 능욕에 견디다 못한

중국 농민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호노를 몰아내고, 한족의 천하를 재건하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일어난 반란 세력들 중에 가장 거대한

홍건적은 원의 수도 대도까지 공격할 정도로 강성했고, 그 덕분에 강남에서 원의 지배가 약해진다.

 

강남에는 원의 세력을 격파하고, 무수한 한족 군벌들이 난립한다.

특히 호광, 강서 지방에는 한왕을 자처하는 진우량, 강소성 소주에는 소금장수 출신의

장사성이 오왕을 자칭했다.

진우량은 뛰어난 무장으로서 강대한 군사력을, 장사성은 해안 지대의 풍부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원장은 홍건군이 본격적인 북벌을 1357년에 시도하기 전인 56년 2월 양자강을 건너서

집경~ 현재의 남경을 점령하면서 천하 제패의 첫 발을 내딛는다.

그는 강대한 원과 정면대결하기 보다, 강남으로 가서 세력의 이식과 확장을 꾀한다.

강남에 있던 소수의 원나라 세력은 금새 패해서 주원장에게 흡수당한다.

그러나, 주원장의 위치는 극히 불안했다.

강남의 한족 군벌 중에서 가장 강대한 진우량을 정면에, 장사성을 배후에 둔 상황이었다.

특히 진우량은 장대한 체구에 강한 무력, 야망과 능력을 지닌 무장으로 최대의 적수였다.

주원장은 두 적수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세했다.

장사성

 

그러나, 주원장은 두 적수에 비해 나은 면이 있었으니, 바로 선비들과 인재들을 우대한 점이다.

그는 가능한 많은 선비들을 초빙했는데, 공명에 버금간다는 유기가 오면서 창공에 솟구치는 날개를 얻는다.

유기는 장사성은 무시하고, 진우량에게 전력을 다할 것을 조언했다.

장사성은 탐욕스러운 소금 장수에 불과하지만, 진우량은 야망과 능력이 출중한 효웅이니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확실히 유기의 형안은 놀라웠다. 진우량은 장사성에게 주원장을 양면에서 협격하자고 졸라댔지만 장사성은 몇 번 시늉만

하고 만다. 장사성은 천하제패의 야망이 없이 현재의 부귀영화만 누리고 즐기는 소금장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만약 진우량의 말대로 장사성이 주원장의 뒤를 공격했다면, 역사가 변했을 것이다.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무력한 소금장수를 놔두고, 주원장은 전력을 진우량에게 쏟아부었다.

진우량은 뛰어난 무장이고, 군세도 우월했으나 부하들의 능력이 주원장에게 미치지 못해서 패전을 거듭한다.

공명에 버금간다는 유기, 소하, 조참에 비견되는 이선장, 호유용 등의 책사와 서달, 상우춘, 남옥 등의 명장이 있는

주원장에게 연전연패한다.

 

원말의 반란을 일으킨 한족 군벌들의 세력

 

파양호의 위치

 

파양호 대전

 

계속된 패전에 위기상황을 느낀 진우량은 결국 전 병력을 동원해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이런 식으로 연패하다가는 결국 멸망할 것이기에 압도적인 인해전술로 단판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그냥 머릿수로 밀어붙여서 단판 승부를 내지 않으면 패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했다.

 

서기 1363년 7월 천하의 대세를 결정하는 적벽 대전이 아니고, 파양호 대전이 벌어지게 된다.

 

>>실제로 적벽대전은 파양호 대전을 모방한 후대의 창작이라고 한다. 정사에는 적벽대전이란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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